김영모
교수 (농학박사)
르완다대학교
농업대학
아프리카는
지구 육지면적의 1/5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으로 인구 약 11억 명이 54개의 크고 작은 나라에 살고 있다. 그 중 르완다는 케냐 및
탄자니아의 서쪽, 우간다의 남쪽 그리고 부룬디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로, 이들 나라와 함께 동아프리카 연합을 이루고 있는 내륙국이며 우리나라의 약
4분의 1 쯤 되는 작은 나라에 속한다.
1994년에 인종학살(Genocide) 사건으로 약 3개월의 짧은 기간에 약 100만 명이 죽임을 당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던 나라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쿠위부카(상기하자)”를 외치면서 매년 4월7일이 되면 약 1개월 간 전국적인 대대적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이러한 상처를 안고 국가 재건을 위해 르완다 정부는 당찬 꿈을 실현 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재 양성이 시급해서인지 장학금을 지급하며 대학생들의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보조해 주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르완다에서 KOICA 봉사단 일원으로 국립농업대학에서 봉사를 4년 넘게 해 오고 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이들의 어려운 여건들을 보면서 자연히 내가 어렸을 때와를 비교하며 느껴지는 것들 또한 많다. 해방 직후에 태어나 6.25를 겪으면서 어려웠던 기억들을 돌이켜 보았다.
혹독한 겨울철에 불도 때지 않은 냉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겨우내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이듬해 보리 수확 할 때까지 먹을 것이 부족해서 힘들게 살았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가을걷이 후 한 알의 이삭이라도 버리지 않으려는 벼 이삭 줍기, 수확기에 쥐들이 훔쳐간 곡식을 찾기 위한 쥐구멍 사냥, 풀씨를 수집하던 기억 등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말이지 기억에서나마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어려웠던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생생히 기억된다.
그랬던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에 GNP가 1,000불이 안되던 나라가 불과 30여년 만에 20,000불 이상의 고소득 국가가 되었고, 6.25 전쟁 후 불과 35년 만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룬 나라이다. “한국은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을까?” 라고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자들은 많은 지표들을 분석하겠지만, 공직생활을 마치고 해외 여러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바로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특별한 DNA가 있구나 하곤 하지만, 정말이지 다른 나라 국민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면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개선의 의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돈이 없어서 노동력을 살 수 없어도 이웃과 더불어 “품앗이” 활동으로 협동하며 모든 일들을 슬기롭게 마무리 하였던 국민이 스스로 자랑스럽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가 봉사활동을 하며 경험한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느낀 점들은 이들 나라 국민들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들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 르완다 농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서 많은 일들을 더 시도해 보았다. 이들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방법을 가르쳐 주어도 그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실패가 두려운 점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돈이 드는 일이나 노력이 드는 일들은 정부가 하는 일이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예로, 농사를 짓는 경사지를 계단식으로 해야 토양 침식을 막고 농산물 수확이 늘어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우리가 계단식으로 개량해 주겠다고 해도 자기 땅을 제공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고용한 경비원에게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 오라고 하면 여지없이 또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사들고 와서는 그 사람에게 돈을 주라고 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은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교육 하는 동안 수업시간에 늦지 말라고 아무리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 이들에게 돈을 아껴라, 노력하라, 성실하라, 정직하라고 아무리 교육을 해도 전혀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슬프기마저 한다.
봉사자 교육 중 어느 강사가 들려준 사례이다. 케냐의 한 마을에 물이 부족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우물을 파 주었더니 그 지방 아낙네들이 우물을 다시 메우고 예전 방식대로 2-3시간 걸으며 물을 날라다가 생활을 계속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려움이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아니었으며, 하루의 일과를 가능한 한 많이 쉽게 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아낙들은 물을 길어 오는 2-3시간동안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거나 잡담을 하는 것이 그들의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봉사자들은 이렇게 우물을 파주었으니 그 것을 이용하여 위생도 상태도 개선될 것이고 편리함과 시간 절약으로 다른 분야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효과를 생각하고 결정했을 프로젝트인데 현지인들에게는 전혀 딴판으로 결과가 나타난 것이었다.
한 사회나 집단이 발전하려면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나 전통을 토대로 한 발전이 바람직하다. 부자 나라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다를 수 있다. 원조 공여국 사람들이 이들 나라에 와서 자신들의 식견과 안목의 잣대(Ruler)를 기준 삼아 우리식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봉사자들을 그들은 오히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이 우리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원조 공여국 그룹(DAC)에 가입하여 아직 그 규모가 미국이나 일본 및 유럽국가에 훨씬 뒤지지만 OECD 가입 국가 중 원조금액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60개국이 넘는 나라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수혜국 사람들은 겨우 그것밖에 주지 않느냐며 다른 원조국들과 비교하며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많은 원조국들이 “파리선언(2005년)”과 가나의 아크라에서 “아크라 행동계획(2008년)”을 발표하며 원조의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원조 효과성 제고에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그들을 깨우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행동하며 가르쳐 주는 게 답일 것 같다.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봉사단원을 많이 파견하는 나라이다. 한국만의 독특한 원조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느껴진다. 농업분야의 예를 들면 시범농장을 우리가 “직접 경영하여 농업기술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과 “현장 학습 교육을 통하여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그들에게 빵을 주지 말고 밀농사를 짓는 방법과 밀가루를 생산하고 빵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봉사활동이 앞으로는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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